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
발달장애인 동생과의 시설 밖 생존일기 <어른이 되면>
유튜버 '생각 많은 둘째언니'는 18년간 시설에서 생활하던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 서울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상을 브이로그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기로 했죠.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자신의 의사보다는 효율적으로 통제해야 할 어린 아이같은 대상으로 보고, 돌봄의 부담은 고스란히 가정에 지워지는 현실. 그 속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질문들을 던집니다.
장애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의 자립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리고 후원자들과의 창의적이고 꾸준한 소통으로 1,249명 후원자 뿐 아니라 여러 언론 매체들의 주목도 받았던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 사회적 문제와 일상이 교차하는 곳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잡지를 통해 살아나다
프리즘오브 특별호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2017년 수십 개의 잡지 프로젝트들이 텀블벅을 찾았지만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것은 <프리즘오브 특별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일 것입니다. 한 호당 하나의 영화만을 다루는 잡지 프리즘오브가 휴간을 깨고 낸 이 특별호 펀딩에는 하루만에 7천만원, 최종 1억이 넘는 후원금이 모여 모두를 놀래켰습니다.
비록 영화 '불한당'은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끈질기게 사랑하는 일명 '불한당원'들이 작품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한 분야, 심지어는 단일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을 모아 만든 이 잡지처럼, 좁지만 깊이있는 시선을 담은 잡지 형태 프로젝트이 새해에는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주변에 코딩을 배운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요즘. 시작할 곳을 모르겠다는 분들에게는 <WEB1> 프로젝트가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료 코딩 강의 ‘생활코딩’으로 잘 알려진 이고잉 창작자의 새 프로젝트 WEB1. 월드와이드웹의 기본으로 돌아가 웹 코딩의 기초를 차근차근 배우는 동영상 수업을 '저작권 없이 무료로' 배포하기 위한 펀딩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강의 자료 삽화를 그릴 예술가 70명을 모아 공동 창작자로서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펀딩 이후 WEB1은 웹에 쓰이는 기술을 좀 더 깊게 이해하는 WEB2 과정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일이라는 점에서, WEB1은 텀블벅에게도 닮고 싶은 점을 많이 보여준 프로젝트였습니다.
귀여운 웰시코기와 가면올빼미. 합치면 오그리와 도그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귀여운 것을 사랑하는' GEP 창작자의 수첩 속에서 태어난 친구들이 어떻게 텀블벅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어느 날 귀여운 낙서가 SNS에 올라오자, 오그리와 도그리에 열광하는 많은 분들이 생겨났고, 이윽고 두 친구를 실물로 직접 키우고 싶다는 '분양 문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렇게 탄생되어 2,289명의 품에 안긴 특별한 친구들 오그리와 도그리. 이들을 보면 텀블벅 프로젝트 진행의 핵심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탄생부터 제작까지 혼자가 아니었던 오그리와 도그리는 호응에 힘입은 창작자의 정성으로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2017년은 이전부터 불거진 문화계 내 성폭력 사태로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픔을 고발하고 서로 연대하고자 하는 뜻깊은 움직임으로 기억될 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 중심에는 <참고 문헌 없음>이 있었습니다.
<참고 문헌 없음>은 문학계에서 기존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여성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작해 낸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입니다. 글을 쓰는 손들이 모여 이룬 해시태그 심볼은 단단한 연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후원금은 문화계 내 성폭력 고발자들의 법률과 의료 지원 등을 위해 쓰였습니다.
진행 중인 사안들을 주제로 여러 주체가 모여 시작한 만큼 진행 중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관련된 문제들을 성찰하며 피해자들과 끝까지 함께하고 있는 <참고 문헌 없음> 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마더그라운드 스니커즈>는 디자이너 이근백이 여행과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밑창은 등고선과 나무의 무늬를 본땄고, 나무와 이끼 등 자연에서 착안해 제품의 색을 결정하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한 단순히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믿을 수 있는 작업자들과 긴밀하게 협업해 장인정신이 깃든 운동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판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만드는 창작자의 시도를 보며, 많은 후원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보냈습니다.
<마더그라운드 스니커즈> 프로젝트 이후, 디자인과 공정에 대한 철학을 가진 신진 브랜드들이 텀블벅을 통해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통 우리에겐 창작자를 직접 만나거나, 창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습니다. 지난 9월, 마포 탈영역 우정국에서 텀블벅과 2년 연속으로 함께 진행되었던 <멀티 페스티벌 : 포스트 사이드>는 이러한 아쉬움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공부터 요리, 사진, 꽃꽂이, 메이크업 상담, 즉석 초상화와 사진까지... 다채로운 창작자 13팀이 자신들의 활동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 수많은 방문객들과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창작자와 후원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일은 양쪽 모두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놀라운 경험이 되곤 합니다. 창작과의 거리를 좁히는 시도들이 올해에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나와 나의 딸에게도 안전하게'는 일념 하나로 만든 YULIP 립스틱. 원혜성 창작자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유해물질 걱정 없이 임산부도 바를 수 있는 립스틱을 찾다, 결국 건강한 성분의 새로운 립스틱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작했지만, 앞으로 립스틱을 바르게 될 딸과 주변 아이 엄마들, 그리고 건강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필요까지 생각하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펀딩 중에 직접 예비 후원자들을 만나 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립스틱은 전 성분이 천연성분이지만 발색과 발림성도 일반 립스틱에 뒤지지 않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개인적인 필요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공감하는 후원자와 만나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국내 최대 독립출판 행사임과 동시에, 일년 중 가장 많은 텀블벅 창작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하는 많은 창작자들이 사전 텀블벅 펀딩을 통해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올해에는 북서울미술관 현장에서 텀블벅이 처음으로 현장 수령 부스를 내고, 부스 운영으로 바쁠 창작자들을 대신하여 직접 선물을 수령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작자와 후원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현장에서 수행해 볼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2018년도 응원하겠습니다.
우리 집 동물들을 생각하며
까다로운 반려묘를 위한 프리미엄 고양이 정수기
2017년 한해 동안 텀블벅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프로젝트들이 꾸준히 사랑 받았습니다. 프로젝트 21의 <고양이 선인장 정수기>는 "우리집 고양이가 어떻게 하면 물을 잘, 건강하게 마실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각 고양이의 취향에 맞춰 솟아오르는 물과 흐르는 물, 고여 있는 물 세 종류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정수기를 개발했습니다.
제품을 디자인하고 상용화하는 일이 처음이었던 신생 팀이 의기투합해 기획하고 만들어냈기 때문에 더욱 뜻깊었던 이 프로젝트는 소셜미디어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공정을 수정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등 펀딩이 끝난 뒤에 더 많은 도전에 직면했는데요. 끝까지 잘 마무리하며 더 단단하게 성장하여 다음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보드게임 <부루마불>을 만든 씨앗사. 오래 전 절판되었던 형제 게임 <부루마불 트레이드>를 출시 35주년을 기념해 다시 냈습니다. 숨겨진 명작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절판되어 만나기 힘들었던 '트레이드' 시리즈. 그 당시의 제작 노트를 기반으로 꼼꼼하게 새로 만들어, 한정 복각판과 리뉴얼판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한편, 여러 기록으로 흩어져 있던 88 서울올림픽의 방대한 디자인 유산을 무려 1년 반의 긴 시간동안 디지털로 복원하여 매뉴얼 북으로 제작한 <88올림픽 GRAPHIC STANDARDS MANUAL> 프로젝트도 많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전 세대의 디자인 유산을 복원 또는 복각하는 방식에 대한 토론을 촉발시키기도 했죠. 2018년에는 어떤 의미 있는 것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창작을 돕는 창작
디자인부터 집필까지, 시작하는 창작자를 위한 프로젝트들
아이디어가 형태를 입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작물의 종류에 따라서 토대를 만드는 복잡한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기 일쑤죠. 금형이 잘못 나오거나 인쇄 과정에 문제가 생겨 주저앉아 울었다는 이야기들은 사실 창작자 한두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무료 폰트 50-60종의 사용 사례를 정리한 <무료 글꼴 디자인 노트>와 제작시 색상 문제에 도움을 주는 <인쇄 색상 매칭 실무 가이드>는 디자인 단계를 돕고, <후가공 박 견본집 Gold, Silver, and More> 프로젝트는 까다로운 인쇄 후가공 작업을 견본집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한 해의 시작과 끝은 역시 다이어리와 달력 아닐까요? 연말이 되면 텀블벅은 수많은 시각문화 창작자들의 톡톡 튀는 달력, 다이어리 프로젝트로 북새통이 됩니다. 수많은 달력 프로젝트 가운데 독특한 접근으로 무릎을 치게 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달력과 다이어리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는 김가든 스튜디오의 <달력자>입니다. 어린 시절 많이 쓰던 모양자와 달력 틀 모양의 자가 합쳐져 직접 만들고 그리는 재미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동시에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Day-off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100가지 질문, 연말정산> 프로젝트는 후원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되물을 수 있는 100가지 질문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창작자와 후원자 모두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획들이 많이 등장해 즐거웠던 연말이었습니다.
퀴어 단편영화 <기울어진 여름>은 동성 커플의 평범하고 아픈 여름날의 연애를 다뤘습니다. 키라라, 허챠밍, 미누시그 등 기존에 각자의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젊은 창작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영화음악과 분장, 선물 제작을 진행했죠. 또한 소액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지만 좋은 촬영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약속을 후원자들과 함께한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 결과, 단편영화 카테고리에서는 가장 높은 금액 펀딩에 성공해 멋지게 관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주인공 시형이 주변에서 만난 여자들과 풍경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여자들>은 텀블벅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는 독특한 리워드로 주목받았습니다. 주연 배우 최시형씨가 운영하는 카페 <남국재견> 에서 홍차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발급하고 영화 속 등장하는 가상의 소설 <이게 다인 여자>를 출판하는 등, 감동을 선사하는 선물 기획이 돋보였습니다.
텀블벅 창작자들 중에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서울 외 지역 기반 창작자들이 지역색을 살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은 좋은 변화입니다.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 프로젝트는 인천 지역에서 활동해 온 창작자들이 인천 지역 공간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카페'라는 주제로 풀어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지역 기반의 프로젝트의 탄생에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다양한 분야의 부산 사람들이 만드는 '부산 대표 작당모의 잡지' <다시, 부산> 프로젝트 역시 각양각색 부산의 즐길거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두루 담아, 부산을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 진짜 부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잡지에 기장 다시마와 삼진어묵 교환권을 끼워 선물하는 멋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일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 함께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2017년 텀블벅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는 나의 일과 경험에 대해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오프라인 이벤트 프로젝트들의 등장입니다.
예컨대 IT 분야 디자이너들의 커뮤니티 디자인 스펙트럼에서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과 <창조성과 시스템 사이에서> 두 행사 참가자를 텀블벅으로 모집했습니다. 또, 좀처럼 모일 일이 없었던 IT 업계 여성 기획자를 위한 컨퍼런스인 ‘여기컨'도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React Seoul을 필두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위한 개발 컨퍼런스와 밋업들도 연달아 열렸습니다.